각 민족에게는 그 민족 특유의 문화가 있으며, 문화를 역사와 결부시키거나 떼어내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살아보지 않은 과거의 모습들을 추론하고 예단하여 확정짓는 것은 어려운 일이며 전통이란, 변화하는 시대의 시간속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라 단절된 역사 속에서는 더욱 문화회복이 어렵습니다. 이에 서울시가 1996년 부터 전문가의 고증을 받아 덕수궁 대한문에서 왕궁수문장 교대의식 행사를 재현하고 있으며, 왕궁 수문장교 대의식 행사는 영국 왕실의 근위병 교대의식과 비견되는 화려하고 품위 있는 한국 전통문화 상품으로 자리매 김 하고있습니다.
보신각은 종각이라고도 하며, 고종 32년에 보신각이란 사액을 내린것에서 이름이 지어졌습니다. 태조 4년에 처음 지어진 후 네번이나 불타 없어지고, 여덟번에 걸쳐 다시 지어졌습니다. 현재의 건물은 1979년 8월에 서울특별시에서 지은것으로, 동서 다섯칸, 남북 다섯칸의 2층 누각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보물 제2호인 보신각종은 세조 14년에 주조되어 원각사에 있다가 절이 없어진 후 남대문으로 옮겨지도 다시 선조 30년에 현 명동성당 부근 명례동현으로 옮겨졌습니다. 현재는 수명을 다하여 더이상 사용하지 못하게 되어, 국립 중앙 방물관에 보관되어 있으며, 지금의 종은 국민성금을 모아 1985년 새로 복원됐습니다.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횃불을 이용해 소식을 전달했고, 비가 오거나 구름이 덮혀 봉수로 연락이 불가능 할 경우에는 작은 북, 뿔나팔, 불화살, 태형깃발 등으로 급보를 알렸으며, 이것도 상황이 여의치 않을 경우 봉수군이 다음 봉수대까지 뛰어가서 소식을 전달하였습니다. 거화의 재료로는 이리와 말, 소, 토끼똥, 관솔, 뗄나무 등 주변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재료가 연료로 사용되며, 탄, 회, 조당등을 주재료에 섞어 낮에 거화시 연기가 바람에 흐트러지지 않게 하기 위한 보조재료로 사용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