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 수문장>'우리는 왕궁수문장교대의식 대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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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7-12-12 17:39 조회2,439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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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서재훈 기자 = 오전 9시, 아침부터 땀이 줄줄 흐른다. 서울시청 별관 막사에서 뒤엉킨 70여명의 청년들은 땀이 범벅이 된 채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입기도 복잡한 한복을 입고 기다란 수염을 붙이느라 거친 숨을 몰아쉰다.
이들은 덕수궁을 지키는 수문장들이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서울시청에서 덕수궁을 오가면 수문장 교대식을 치른다. 키와 체격 등을 고려해서 뽑은 탓인지 취타대와 수문군들을 이끄는 모습이 어엿하다. 대부분 파릇파릇한 20~30대 청년들로 이뤄져있다.
교대식 절차는 꽤나 복잡하다. 북이 울리면 군호로 응대하고, 궁궐열쇠가 든 함을 건네받는 등 잠깐이라도 정신을 놓고 있으면 모든 것이 엉켜 버린다.
무더위에 흐르는 땀도 넘쳐나는데 교대식을 망칠 수도 있다는 긴장감으로 인해 식은땀까지 흘려 탈수 증세에 시달린다. 고 되도 이렇게 고될 수가 없다. 그래도 수문장으로서의 자부심은 오늘도 덕수궁 앞에 서게 만든다.
5개월 째 수문장을 맡고 있는 이모씨는 “단지 돈벌이라 생각하면 수문장을 감당하기 쉽지 않다”며 “외국인에게는 한국의 전통을, 어린이들에게 우리나라 역사를 보여준다는 기쁨에 덕수궁을 지키고 있다”고 함박웃음을 짓는다. 이들에게 외국인과 어린이들의 관심 또는 감탄은 커다란 힘이다.
하지만 매순간 힘이 넘쳐나는 것은 아니다. 한쪽 얼굴에는 노곤함과 피곤함이 어렸다. 이들은 흔히 말하는 88만원 세대이기 때문이다.
월급은 130만 원 정도. 대부분 정규 직원이 아닌 파견 직원이다. 전체 임금근로자 가운데 비정규직 비율이 50%가 넘는다는 2009년 이들은 힘겹다. 그러나 덕수궁을 지켜나가는 날들이 늘어갈수록 내 자신을 지켜나갈 수 있다는 희망도 늘어난다.
박모씨는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서울의 중심부에서 커다란 궁궐의 수문장을 지내본 경험은 형용할 수 없는 긍지와 떳떳함을 안겨준다”며 “앞으로 내 인생의 수문장 역할도 능히 감당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씩씩하게 말한다.
이번 주말 가족들 손을 잡고 덕수궁에 가보는 것은 어떨까. 오늘은 덕수궁을 지키지만 내일은 자신의 인생을 지켜나갈 늠름한 청년들을 만나볼 수 있다. 이들이 바로 미래의 대한민국을 지켜나갈 수문장들이다.
jhseo@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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